- 에너지 낭비
진정한 경제적 풍요는 성실, 믿음, 관대함, 사랑이 넘자는 마음을 지닌 사람에게만 실현된다. 이러한 자질을 지니지 못한 사람은 경제적 풍요가 무엇인지조차 깨달을 수 없다. 왜냐하면 행복과 마찬가지로 풍요는 단순히 물질적 소유만이 아니라 내면에서부터 실현되기 때문이다. 탐욕스러운 사람도 백만장자가 될 수 있겠지만, 평생을 비참하고 인색하고 불행하니까 살아갈 것이다. 그는 자기보다 부유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물질적으로 부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루하고 꿰 살게 된다. 세상은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좋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돈 몇 푼, 혹은 땅 몇 평을 더 확보하려는 인간의 맹목적인 열망을 보면, 이기심이란 얼마나 어리석고 무지한지,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얼마나 파괴적인지 깨닫게 된다. 자연은 조건 없이 모든 것을 나눠주면서도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러나 사람은 모든 것을 움켜쥐면 서도 모든 것을 잃는다. 경제적으로 진정한 풍요를 누리고 싶다면 많은 사람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이 옳은 일을 하면 오히려 손해 볼 거라는 확신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의를 최고의 선이라고 생각하는 당신의 믿음을 '경쟁이라는 단어가 흔들지 못하게 만들어라, 나는 '경쟁의 법칙'에 대해 사림들이 뭐라고 이야기하든 신경 쓰지 않는다. 왜냐하면 경쟁의 법칙을 보잘것없게 만들어버리는 절대 불변의 법칙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법칙은 심지 많은 이를 진정한 경제적 풍요에 이르게 한다. 정의로운 사람들은 자기 내면과 삶에서 경쟁의 법칙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인생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경쟁의 법칙에 쏟아부은 사람들을 지켜보았고, 그런 행위가 어떤 파멸을 가져오는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모른 채 정의의 길에서 벗 어나 방황하는 사람은 경쟁이란 전쟁에 대비해 자신을 보호해야 한다. 반면에 정의 추구를 가장 우선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 방을 위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허울 좋은 말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정직과 자기 신뢰의 힘으로 자신만의 방식을 고수하면서 꾸준히 경제적 풍요의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그들을 해지려고 했던 자들은 이내 패배하고 물러갔다.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시대여서 수많은 논 생과 혼란이 가득하다. 그런데 논쟁은 사실보다는 가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사실은 명확하고 변하지 않는다. 가설은 가변적이고 결국 사라진다. 지금 우리 시대 사람들은 사실 자제에 만족하지 않기에, 사실의 단순함을 받아들이며 살지 않는다. 사람은 본래 전실 지 제보기는 전실에 덧붙인 포장을 좋아한 다 어떤 시심이 등정하진, 사람들은 여러 의문을 제기한다 “그 사실을 어떻게 구실 명할 수 있죠?” 이후에는 가설에서 또 다른 가설이 나오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결국 모순된 가설들 속에서 사실은 자취를 감춰 버린다. 이 과정에서 상반된 여러 계파와 학파들이 탄생한다. 하나의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면 다른 사실들도 인식할 수 있는 데 반해, 가설은 사실을 설명해 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더 모호하게 만든다. 당신과 나, 우리 삶에 관한 사실들은 언제나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자기중심성과 이기심이 만든 잘못된 환상을 버린다면 인제든지 발견하고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은 지혜를 찾기 위해 자신의 존재 너머를 살필 필요가 없이 자기 안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대로 존재하고 생각하는 대로 산다. 따라서 생각과 존재에 관한 사실을 인식하고 깨달으면, 그 사람은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는 광활 한 길에 들어서게 된다. 우리가 현명함 또는 지혜로 움을 얻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의 존재와 영혼이 각각 별개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할 때 영혼을 포함해서 생각하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빠진다. 영혼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잘못된 추측에 빠지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 결국 통합된 존재로서 인간의 본질. 더 정확히는 자기 자신의 본질에 대해 깨닫지 못한다. 인간의 삶은 실재이고, 생각도 실재이며, 생명도 실재이다. 즉 자기 자신을 실존하는 현실로 탐구해야 한다. 마음과 생각을 자기 존재와 분리해서 본다 면 마지 존재하지 않은 대님을 연구하는 것과같이 어리석다.
사람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듯 '삶과 생각'을 따로 분리할 수 없다. 빛, 광채, 색채가 하나의 실재이듯 정신, 생각, 삶도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다. 빛, 광채, 색채를 설명하기 위해 다른 요소가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사실'은 그 자체로 충분한 모든 지식을 포함하고 있다. 정신적 존재인 인간은 늘 변한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잠재력을 지니고 있기에 점점 성숙하고 완전해져 간다. 인간은 생각 하나하나에 따라 그 존재가 빚어진다. 모든 경험이 성품에 영향을 준다. 모든 노력이 그의 내면을 만든다. 변화의 법칙에 따라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로 결정한다면 얼마든지 성공할 수 있으며, 정확히 반대로 인간의 타락에 대한 비밀도 바로 여기에 있다. 삶은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 자체이며, 생각하고 행동하는 대로 면회한다. 이런 '생각의 원리를 이해하기 전이라도 인간은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계속 변화해 간다. 하지만 '생각의 원리'를 한번 이해하고 나면, 변화의 과정을 스스로 현명하게 지휘할 수 있다. 그런 사람은 이제 오직 제대로 된 방향으로 자신을 이끌며 변화해 갈 수 있다. 한 사람의 생각이 모두 합쳐져 '그 사람' 자체를 형성한다. 이 원칙은 오자 없이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적용된다. 생각을 더 하느냐 빼느냐에 따라 결과의 차이가 있지만 적용되는 수학적 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자, 지금까지 사실과 가설, 그리고 그 안에 혼자 더 있는 사실로써 인간의 삶과 생각에 대해 말했다.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당신에게 이 사실을 꼭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반드시 기억하라. 사람은 정신적 존재이며, 정신은 생각으로 구성된다. 생각은 변하기 쉽기 때문에 생각을 바꾸면 삶은 변화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존재는 우리가 품었던 생각의 결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에서 시작되었고, 모든 것이 우리의 생각으로 만들어졌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영혼은 인간이 소유한 도 다른 자아가 아니다. 인간이 곧 영혼이다. 바로 당신이 생각, 행동, 지식의 주체이다. 모든 정신적 요소를 전부 합친 존재가 바로 당신이다. 욕망하고 슬퍼하고 즐거워하고 괴로워하며 미워하고 증오하는 주체가 당신이라는 이야기다, 마음은 형이상학적이거나. 신비롭고 초인적인 영혼의 도구가 아니다. 마음은 영혼이요, 실재하는 존재이며, 당신 자신이다. 사람은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 있으며 자기 모습을 바로 볼 수 있다.
자기가 만들어낸 환상과 가설의 세계에서 돌아서서 실재를 직면할 준비가 되었을 때 '진짜 자신이 누구인지 인식할 수 있다. 또한 자기가 바라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며 새로운 생각을 지닌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다. 모든 선택의 순간이 운명을 결정하기 때문이다.